첫 직장은 대기업 연구소였다. 밀려오는 취준생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해 찾은 안정적인 선택지였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쁨보다 안도감이 컸다. 무려 두 곳을 동시에 합격해서 하나만 골라야 했는데 어리석게도 ‘지역’, ‘연봉’, ‘직무’를 보고 결정했다. 당시에는 이 선택에 꽤나 만족했다. ‘대학 4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부모님도 좋아하시겠다.’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취업 후 1년 정도 지나서는 출근길이 괴로웠고 2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결국 업을 바꿨다. 몸은 힘들어도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나니 기쁘고 행복했다. 밤늦게 회의를 하고 주말에 일을 하며 남들이 휴가가는 시즌에 가장 바빠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고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첫 직장을 고르는 것이 유독 어려운건 ‘스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라서’이지 않을까. 짜인 커리큘럼과 로드맵을 10년 넘게 달려와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점에 놓였을 때의 막막함. 많은 기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중 잘 맞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기준이 없다는 답답함. 앞으로 한 발짝 내딛고 나면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 많은 것들이 불안정해서 모두가 아는 대기업, 평균 이상의 연봉, 누가 들어도 멋진 직무와 같은 더욱 안정적인 선택지를 찾았던 것 같다.
잘 생각해보면 외부 요소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멀쩡한 것 같은 대기업도 한 순간에 문을 닫는다. 초봉이 좋아도 인상률은 그렇지 않을 수 있고 세상이 빠르게 바뀌어 직무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이제와 서야 돌이켜보니, 어딜 가나 신입에게 기대하는 핵심 역량은 비슷한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긍정적인 태도로 바라봤다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리다’는 원래 ‘어리석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게 어느 때보다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