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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 - 30대 기혼녀, 휴직하고 6주 동안 혼자 유럽 여행한 썰

zoey 2023. 7. 5. 23:24

지난 2월부터 3개월간 휴직을 했고 6주간 혼자 유럽 여행을 했으며, 현재는 복귀해 다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한 줄로 담백하게 쓸 수 있지만 휴직을 결정할 때도, 남편을 혼자 두고 떠날 때도, 돌아와서도 생각이 많았다. '회사 잘 다니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길게 혼자 여행을 한다고? 남편은?' 30대 기혼녀가 갑자기 모든 걸 멈추고 쉬겠다고 하니 주변의 반응은 비슷했다. 🥲

 

멈추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결정하고 휴직까지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그 전부터 오랫동안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마주한 문제가 어려워 피하고 싶은 건지, 체력이 부족해서 충전이 필요한 건지 스스로 확신이 없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 문제들을 해결하고, 잘 마쳤는데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기도 하고 건강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잠시 멈추기로 마음을 먹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거야

여행은 일상과 한 발짝 거리를 두기에 좋은 방법이다. 어쩌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6주 동안 혼자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 안시 호수에서 자전거도 타고, 나폴리 홈 경기도 보고, 런던에서 손흥민 선수가 골 넣는 것도 직관하고, 스코틀랜드에서 하이킹도 했다. 계획 없이 출발한 여행이었지만 돌아보니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운 시간이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좋았던 건, 가장 편안한 속도로 일상을 보낸 것이다. 배고플 때 먹고, 낯선 환경에서 주변을 관찰하고, 순간의 감정을 알아채고, 노트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좋아서 끝까지 혼자 여행했고 무사히 돌아왔다.

 

 

여행을 마치고

#행복은_가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 우연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비 예보로 울적했는데 갑자기 파란 하늘이 펼쳐졌을 때, 상쾌한 바람이 불어서 걷기 좋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순간을 나눌 때. 특히 화려하고 복잡한 도심보다 광활한 자연에 있을 때 행복감이 훨씬 컸다.

#왜_일하는가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음에도 마음에 여유가 없고 답답했던 건, 일하는 이유를 잃어서였던 것 같다. 경험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이 재밌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재미없어도, 못해도 해야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그럼에도 못한다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뭐든 열심히 하다 보니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책도 읽고, 돌아와서 지인들과 대화하며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다. 무슨 일을 하든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내가 가진 talent로 임팩트 있는 일을 좀 더 하고 싶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좋아서 하는 일들을 하나씩 끼워 넣어보자고. 

#가족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것. 당연한걸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 잊어버리는 실수를 한다.  혼자서 자유를 만끽했지만 가족과 함께 했다면 그 행복이 두 배, 세 배는 컸겠지.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이 소중함을 잘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달리기

10년, 20년 뒤에도 건강하게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유럽은 공원과 산책길이 잘 되어 있어서인지 조깅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할아버지도 탄탄한 근육으로 뛰는 모습을 보니 너무 부러웠다. 멋있었다. 속도, 마라톤 이런 건 모르겠고 10년 뒤 안시 호수에서 파란 호수와 하늘을 보며 러닝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휴식을 갖는다고 사람이 바뀌는 건 아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느새 일과 문제 해결에 몰입해 있고, 여전히 디테일을 신경 쓰고, 이왕이면 잘하고 싶어 한다. 여유 있는 척해보려고 하지만 조금함이 금방 티가 난다. 여전히 스트레스도 받는다.

그래도 3개월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상 속에서도 의도적으로 잠깐 멈추는 노력을 한다. 무엇 때문에 들뜨고 기쁜지, 왜 화가 나는지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퇴근길 하늘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달리기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안주하기보다는 느리더라도 성장하는 길을 선택한 만큼 내적 동기를 잃지 않으려고 신경 쓴다. 무엇보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잊지 않으려고 한다.

 

좋은 선택이었고 귀한 3개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