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기, 진짜 좋아?!
새해가 시작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기록하는 습관, 글로 표현하는 게 좋다고 많이 들어왔었는데, '굳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여행 중에도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친구를 봤다. '진짜 좋아?'라고 물어봤더니 효과가 있었고 몇 년째 꾸준히 쓰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줬다. 1. 하루 중 짜증 나거나 우울했던 일 2. 즐겁거나 행복했던 일 3. 내일 할 일을 한 줄로 간단히 먼저 적어보는 거다. 그렇게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 나중에 내가 무엇에 기분이 안 좋은지,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래? 그정도는 할 수 있지!"
그러다 우연히 이연작가의 영상을 봤다. 기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일기는, 종이와 펜으로 쓰는 게 좋다고 했다.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일기 어플로 사진과 함께 남겼는데, 듣고 보니 종이에 펜을 쥐고 직접 쓰는 게 효과가 더 좋을 것 같았다. 생각하는 속도만큼 손가락이 따라가질 못하니까 머릿속에서 한 번 정리가 되는 것도 있고, 모든 걸 다 적을 수 없으니 하루를 마감하면 진짜 기억하는 것, 진짜로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기록하고 싶은 것들을 종이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꾸준히 써보자
2022년 1월 1일에 쓰기 시작해서 2주, 한 달을 지나 벌써 세 달째 꾸준히 쓰고 있다. 이연 작가가 추천한 대로 마음에 드는 노트와 손에 감기는 볼펜을 샀다. 잠자기 전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으로 매일 책상 앞에 스탠드만 켜고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자필로 쓰다 보니 손도 아프고 글씨도 못 봐주겠고, 문장도 생각했던 것보다 매끄럽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해봤다(뭐든 끝까지 꾸준히 하는 건 잘하지 내가).
일상은 사소한 순간들의 합이었다.
초반에는 짜증나거나 우울한 일을 적는데 1초도 안 걸렸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피자에 피클이 터져서 도착했다거나, 수건에 손을 뻗었는데 남편이 아침에 쓰고 걸어둔 젖은 수건이었다거나. 어느 날엔 그냥 쌓이는 재활용 쓰레기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지금 보니 조금 어이가 없기도..? ㅎㅎ)
하루 중 행복하고 즐겁고 기뻤던 순간을 적을 때는 가장 좋은 기억을 고르느라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것도 생각보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어느 날은 책상 정리를 해서 즐거웠고, 목욕하는데 입욕제 거품이 풍성해서 기분이 좋았고, 디카페인 커피가 맛있어서 즐거웠다. 남편과 점심을 먹은 게 행복했고 택배가 잔뜩 도착해서 신난 날도 있었다.
작은 것에도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하루하루의 기록을 적다 보니 '특별히 짜증 나는 일 없음'이라고 넘어가는 날이 늘었고, 기쁘고 즐거운 순간이 없는 날은 없었다. 일에서 큰 성취를 얻을 때 비로소 행복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행복은 일상 곳곳에 있었다. 집이 깨끗했을 때, 남편과 손잡고 산책했을 때, 작은 제스쳐로 '쓸모 있음'을 느꼈을 때,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사실 위주로 적던 것도, 점점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불쾌한 감정을 느껴도 '이유가 있겠지~', '사정이 있었겠지~' 하며 인지적으로 상황을 넘기거나 감정을 눌러 왔었는데 적어도 일기장에는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안 보는 일기장인데 뭐가 어려워? 싶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어렵다. 겪어본 사람만이 알 듯. 감정을 알아채고 이름을 붙여서 표현하기까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의 발견>이라는 책을 읽으며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꼈다.
일기장을 돌아보니 3개월 동안 행복한 날이 더 많았다.
오늘도 하루의 감정과 생각을 일기장에 옮겨담고, 건강한 마음으로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