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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물건을 버리고 공간을 비웠더니

zoey 2022. 5. 22. 15:34

여느 때와 같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짜증이 확 났다. 거실, 부엌, 안방까지 눈길이 닿는 곳마다 물건이 꽉 차 있었다. 회복의 공간이어야 할 집이 눈을 둘 곳도, 편하게 기댈 곳도 없었다. 편리한 일상을 위해 하나씩 채운 아이템들이 어느새 공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물건 속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주말 동안 대대적인 비우기를 시작했다. 미니멀 라이프 이런 건 모르겠고 당장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 치워야 머리가 덜 아플 것 같았다.

 

기능이 중복되면 버리자

거실에서 가장 눈에 거슬린 건 식탁 대용으로 사서 5년 동안 잘 쓰던 테이블이었다. 확장 기능이 있어서 무려 6명까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주말이면 배달 음식을 펼쳐 놓고 영화와 축구를 보기에 아주 딱인 녀석이었다. 버리기 아까웠지만 부피와 무게가 상당한 데다 식탁이 새로 생겼으니 버리기로 결정했다. 당근 마켓에 싸게 내놓았더니 금세 새 주인을 찾았다.

안 쓰는 것은 버리자

남편도 나도 옷을 자주 사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장에 있는 옷을 모두 꺼내보니 수년간 입지 않거나 너무 오래된 옷, 예뻐서 샀는데 안 어울려서 더 이상 입지 않는 니트, 추억이 깃든 코트, 유행이 지나버린 조끼 등 버릴 것이 상당했다. 싹 정리하고 나니 옷장에 공간이 생겼다. 

내친김에 가방과 신발도 정리했다. 예뻐서 샀는데 발이 불편해서 결국 못신은 구두, 마지막으로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나는 가방까지. 신을 게 없다, 들 게 없다 투덜댔는데 지금보니 없어도 될 것들이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욕심을 냈을까. 수많은 신발 중에 결국은 늘 신는 운동화만 신고, 늘 쓰는 가방만 쓰는데. 더 이상 가방은 사지 않기로 결심하고 신발장도 일부 비웠다.

침실은 최대한 비우자

침실 한쪽 벽면을 차지했던 5단 책장을 다른 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누워서도 늘 맞은 편에 물건이 쌓여 있는 게 답답했었다. 액자라도 걸어볼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흰색 벽과 스탠드 조명 하나만 남겼고, 최고로 잘한 결정이었다. 훨씬 편안해졌다.

물건은 눈에 잘 보여야 한다

생각만 하고 감히 건들지 못했던 공간 중 하나가 창고다. 생필품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항상 여분을 사서 넣어뒀는데 어느 날부턴가 물건을 꺼내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테트리스를 너무 잘해둬서 물건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하면 상상이 될까.

모조리 꺼냈다. 쓰지 않는 물건은 당근마켓에 내놓거나 과감히 버렸다. 정리하고 보니 칫솔, 샴푸, 화장지까지 앞으로 1년 동안은 사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했다. 이 공간이 다시 비워지기 전까지는 안 살 거다. 

 

 

무조건 비우기만 한 건 아니다. 큰 돈을 들여 레이저 빛이 나오는 무선 청소기를 샀다. 공간이 늘 비어 있으니 청소기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깨끗한 상태가 일정 수준 유지되고 있다. 

아, 청소기보다 훨씬 저렴한 티테이블은 쉽게 살 수 있지만 사지 않기로 했다. 안 쓰는 플라스틱 의자에 안 쓰는 상을 올렸더니 높이와 사이즈가 아주 딱이었다. 볼품은 없지만 충분히 제 기능을 해내고 있어서 굳이 새 물건을 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모양새는 웃기지만 꽤 쓸모있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나, 공간을 비워보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비움의 쾌락을 조금씩 느끼는 중!

요즘은 틈틈히 서랍을 들어내며 안 쓰는 물건을 찾아내고 있다. 성격상 앞으로도 미니멀리스트는 못 될 것 같지만 순간의 욕구로 물건을 사고 쌓아 놓는 건 지양해야지.